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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주저앉고 나서야 배운 허리 관리》 1화. 무거운 정수기를 번쩍 들었다가 119에 실려 갔습니다

eunjun0305 2026. 8. 16. 16:29

목차


    2013년 봄, 우리 집 주방에는 아이 키우는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소동이 자주 벌어졌다. 당시 사용하던 정수기는 웅@@웨이의 냉온수 정수기였다. 요즘처럼 탁자 위에 놓는 작은 크기가 아니라 회사나 대형마트 구석에서 볼 법한 물탱크식 대형 정수기였다. 키가 164㎝인 내 몸의 절반 정도까지 올라왔으니, 크기도 컸지만 물이 든 상태에서는 상당히 무거웠다.

     

    문제는 어린 둘째아이의 손이 정수기 코크에 닿으면서 시작됐다. 버튼을 꾹 누르면 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꽤 재미있는 놀이였던 모양이다. 온수는 잠가두어 위험하지 않았지만 냉수는 달랐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물받이가 넘치고, 주방 바닥까지 흥건해지는 일이 반복됐다.

     

    물바다가 된 주방에서 눈이 뒤집혔다

     

    나는 남편에게 안 읽는 책들을 받침대로 이용해 정수기를 조금 높여달라고 몇 번 부탁했다. 아이의 손만 닿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바빴고, 부탁은 계속 뒤로 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 주방에 또다시 홍수가 났다. 아이가 정수기 물을 틀어놓아 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선 아이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바닥의 물부터 닦으면 됐을 일이다. 정수기는 남편이 돌아온 뒤 함께 옮겨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어린아이를 돌보며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는 데 지쳐 있었다. 흥건한 바닥을 보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짜증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말 그대로 눈이 뒤집혔다.

     

    1화: 물바다가 된 주방에서 무거운 정수기를 옮기던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이미지

     

    무게를 가늠하거나 허리를 보호할 자세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화가 난 힘으로 20㎏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정수기를 번쩍 들어 옆에 쌓아둔 책 위에 올려버렸다. 들어 올리는 순간에도 허리에 큰일이 생겼다는 느낌은 없었다. 너무 욱한 상태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릴 틈조차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허리가 조금 무거울 뿐이었다

     

    정수기를 옮기고 나니 허리가 살짝 무겁게 느껴졌다. 잠깐 누워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가 조금씩, 정말 조금씩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번개가 치듯 강한 통증이 온 것은 아니었다. 누워 있으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자세를 바꾸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중에는 몸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누운 상태에서 조금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이거 큰일 났구나.’   그제야 겁이 났다.

    공교롭게도 남편은 출장을 가고 집에 없었다. 집에는 나와 첫째딸, 어린 둘째아들만 있었다. 첫째가 당시 열두 살이어서 어린 동생을 어느 정도 돌봐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하루를 더 지켜보면 통증이 가라앉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상태는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둘째 날 저녁이 되어서야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 둘 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허리를 다친 사람을 억지로 일으켜 승용차에 태워야 하는지, 그대로 두고 지켜봐야 하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지금 같으면 꼼짝하지 못할 정도의 통증을 이틀이나 참지는 않을 텐데, 그때는 119를 불러도 되는 상황인지도 알지 못했다.

     

    친정엄마의 한마디에 119를 불렀다

     

    셋째 날 아침, 결국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들은 엄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119 불러서 병원에 가야지.”

    엄마는 곧바로 우리 집으로 오셨고, 남편이 119에 전화했다. 구조대가 도착했지만 내 몸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거의 ‘반송장’처럼 구조대 이송 의자에 실려 집 밖으로 나갔다. 의자가 조금만 덜컹거려도 허리에 통증이 전해져 병원까지 가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근처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CT로 기억되는 영상검사를 받고 통증 주사와 응급처치를 받았다. 당시에는 급성 허리 염좌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응급처치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입원실로 올라갔다.

    진통제가 듣기 시작하자 그토록 심했던 통증이 차츰 가라앉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는데 허리가 아프지 않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지금은 그날을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오래된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아무리 화가 나도 그 무거운 정수기를 번쩍 들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또 물을 쏟았다면 일단 수건부터 가져왔을 것 같다. 정수기는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두고 말이다.

     

    그날 나는 정수기의 무게만 들어 올린 것이 아니었다. 반복되는 육아의 피로와 짜증까지 한꺼번에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내 허리가 고스란히 받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