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내 몸이 보내온 신호, 한포진 2019》 15화 완결편. 한포진이 내게 남긴 것

eunjun0305 2026. 8. 12. 09:09

목차


    15화. 한포진이 내게 남긴 것

     

     

    2019년 여름, 발가락 하나에서 시작된 가려움이 이렇게 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무좀인가 싶었다.
    그러다 휴대폰 돋보기 속에서 개구리알처럼 모여 있는 작은 수포들을 발견했고, 한포진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

    발은 신발을 신기 어려울 정도로 붓고 피부가 계속 벗겨졌다. 손까지 가렵고 아팠다. 밤에는 가려움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나아지고 싶었다.

    한포진 카페의 글을 몇 시간씩 읽었고, 비타민과 죽염을 먹고 식생활을 바꿨다. 황태진액도 마셨고, 무서워하던 사혈침까지 사용해봤다.

    지금 돌아보면 그중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여러 가지를 거의 동시에 시작했고, 한포진이라는 질환 자체가 좋아졌다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간을 지나며 나는 이전보다 내 몸을 훨씬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그렇게 2019년의 심했던 한포진은 몇 달에 걸쳐 차츰 가라앉았다.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진을 다시 정리하면서 기억보다 조금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2020년 여름에도 한포진이 다시 제법 심하게 올라왔던 것이다. 2019년만큼은 아니었지만 단순히 수포 몇 개가 생겼다 사라지는 정도도 아니었다.

     

     

    ※ 2020년 여름 한포진이 다시 나타났을 당시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2019년 처음 심하게 겪었을 때보다는 약했지만, 발바닥 여러 부위에 다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무렵의 생활을 떠올려봤다.

    2019년에는 한동안 쉬었던 신앙생활을 다시 열심히 하고 있었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일정이 있었고 여러 역할을 맡았다. 겉으로는 내가 선택해서 하고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마음 한편에서는 부담스럽고 답답하다는 느낌도 상당히 컸던 것 같다.

    2020년 이사를 하면서 생활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에는 무척 홀가분했다. 정해진 일정에서 벗어나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이의 새로운 환경 적응이 순탄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이 생겼고, 집에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나 역시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 초여름을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이 보였고 나도 안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한포진이 다시 한바탕 지나갔다.

     

    물론 이 시간들을 연결한다고 해서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내 한포진의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검사를 통해 확인한 것도 아니고 다른 요인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2019년부터 지금까지 내 몸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느낀다.

    나는 마음이 오래 긴장하고 있을 때 몸도 함께 반응하는 편이 아닐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몸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갖게 된 개인적인 생각이다.

     

    2020년 여름 이후에는 예전처럼 손까지 번지거나 발 전체를 뒤덮는 심한 한포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지금도 가끔 발가락이나 발바닥의 작은 부위가 가렵다.

    그럴 때면 습관처럼 휴대폰 돋보기를 켠다.

    그리고 피부 속에 투명한 작은 수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예전처럼 겁부터 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부터 든다.

    '또 왔네.'

    어떤 날은 수포가 생각보다 몇 개 없으면 조금 서운하기까지 하다.

    '에게, 꼴랑 이것밖에 안 생겼어?'

    조금 많이 올라온 날에는 오히려 흐뭇하게 들여다본다.

     

    2019년의 나였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반응이다.

    한포진이 좋아서라기보다 이제는 그 작은 수포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9년의 한포진은 내게 꽤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겪으며 몸이 변하는 과정을 관찰했고,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돌아봤으며, 마음의 상태와 몸의 변화를 함께 살피는 습관도 생겼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한포진을 완전히 없애야 할 적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수포가 나타났다가 피부가 한두 번 벗겨지고 다시 사라지는 과정을 그냥 지켜본다.

     

    어쩌면 한포진이 내게 남긴 가장 큰 것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몸에서 무언가 나타났을 때 무조건 겁부터 내기보다, 잠시 멈춰서 내 몸을 들여다보는 습관.

    2019년 여름 발가락 하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내 생활의 작은 습관 하나를 남기고 끝났다.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귀여운 개구리알들은 지금도 내가 내 몸을 한번 들여다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