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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조금씩 가렵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특별한 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벌레에 물렸거나 땀이 차서 그런가 싶었다. 발가락 하나가 조금 가렵다는 이유로 걱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며칠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가려움에 대한 반응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몸이 살짝 가려운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가려운 곳을 긁을 때 느껴지는 시원함이 좋고, 때로는 재미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그날도 걱정하기보다는 속으로 ‘어, 가렵네. 신난다’라고 생각하며 긁었다.
한 번 긁으니 더 가려운 것 같았고, 가려우니 또 긁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했어야 했지만 당시에는 말릴 이유가 없었다. 아픈 것도 아니었고, 피부가 크게 변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 가려운 발가락일 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초등학생 아들과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는 활동량이 많아 축구를 하러 운동장에 다니고, 새로운 운동을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지나치게 막고 싶지 않았다. 체력이 허락할 때는 함께 다녔고, 혼자 갈 수 있는 곳에는 연락하며 아이 스스로 다녀오게 했다.
아이와 함께 운동장에 나가면 나는 골키퍼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아이는 밤이 될 때까지 공을 차고 싶어 했지만, 마흔에 아이를 낳은 나는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 아이의 에너지를 따라가는 일이 즐겁기는 했어도 몸이 힘든 날이 적지 않았다. 남편은 일이 바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아이의 일상과 활동을 챙기는 일은 주로 내 몫이었다.
홈스쿨링을 선택한 것 자체가 괴롭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 정해진 틀보다는 자유로운 교육을 좋아했고,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 자유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다만 아이가 밖에서 친구들과 다투거나 다른 부모가 개입하는 일이 생기면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때로는 놀이터 CCTV까지 확인하며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그런 일들이 하나씩 쌓였지만, 당시에는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마음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조금 지쳐 있었을지 모른다. 영양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날도 있었고, 가볍게 술을 마시는 습관도 있었다. 이런 생활이 한포진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여러 부담이 겹쳐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것까지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다. 발가락이 가려우면 신나게 긁었고, 긁고 나서 시원해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가락이 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짝 통통해진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붓기가 눈에 띄게 커졌다. 피부에서는 진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겉면도 조금씩 벗겨졌다. 색깔까지 검붉게 변하자 그제야 마음속에서 작은 경고음이 울렸다.
‘어? 무좀인가?’
그때도 한포진이라는 병명은 떠올리지 못했다. 무좀이라면 민망하기도 했고, 이미 발 모양이 흉하게 변해 의사에게 보여주는 것도 창피했다. 붓기가 조금 빠지고 보기 덜 흉해지면 병원에 가보자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족들에게는 발이 신발에 들어가지 않아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첫 번째 이유는 부끄러움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픈 것보다 아픈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더 어려워했던 것 같다.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잘 내색하지 않는 성격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만 기다려보자는 생각으로 병원 방문을 미루는 동안, 가려운 범위는 발가락에서 발바닥 쪽으로 넓어졌다.
한포진으로 고생한 뒤 나는 피부의 작은 변화도 전보다 자세히 살펴보게 됐다. 모든 가려움이 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려움이 계속되고 붓기, 진물, 수포처럼 이전과 다른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면 무조건 참거나 혼자 추측하기보다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증상이 빠르게 퍼지거나 걷기 힘들 정도로 심해진다면 의료진의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2019년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에서 시작된 작은 가려움이 발바닥과 손까지 번지고, 나를 울게 할 정도로 심해질 줄도 알지 못했다.
그날의 나는 그저 가려운 것이 반가워 계속 긁었을 뿐이었다.
내 한포진 이야기는 그렇게 조금 엉뚱하게 시작됐다.
내 한포진 이야기는 그렇게 조금 엉뚱하게 시작됐다.